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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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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海君

조선의 15대 임금(1575-1641, 재위 1608-1623).

'역사 블로거'입네 역덕 카페의 '네임드'입네 하는 나무위키 역사 관련 문서들을 팬덤 사관으로 더럽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좆문가들이 푸는 광해군 썰 들어보면 대충 이렇다: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궁궐

광해군을 타도한 인조 정권이 작성한 기록물이라 걸러 볼 필요는 있겠지만 《광해군일기》 보면 광해군이 왕궁 복구 사업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 거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과연 능양군 일당이 반란을 일으킨 주요인이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반정' 바로 다음 날에 인목대비의 이름으로 반포한 교서를 보면 광해군의 '실정'으로 가장 강조된 것은 대 후금 온건 정책 즉 중립 외교였다.

위에서 말한 애들 요새 "광해군 중립 외교는 허구!" 뭐 이러고 놀지? 응 그런 소리가 허구다. 그럼 광해군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일을 반란군 애들이 쿠데타 명분 1번으로 내세웠다는 거냐.

오타쿠들이 광해군이 중립 외교를 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가장 크게 내세우는 부분은 이런 거다: 광해군이 후금 정벌을 위한 명의 파병 요청에 대해 처음에 거부할 뜻을 밝히긴 했으나, 이를 끝까지 우겨서 관철시키지 않고 신하들의 강력한 주청에 끝내 굴복해서 전투병 파병을 승인했다.

그런데 같은 입으로, 광해군이 대동법 시행에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끝까지 반대하지 않고 마침내는 승인한 것' 가지고는 "광해군 대동법 시행설은 유사역사학" 이러고 앉았다.

어떤 학자가 반정 교서 각 파트의 글자 수를 일일이 노가다로 세어 봤는데, 광해군의 명에 대한 '배은망덕'을 비난한 부분은 총 142자로서 전체의 반정 교서에서 광해군의 실정을 다룬 분량 334자 중 42%였다. 그 다음은 흔히 말하는 '폐모살제(103자, 31%)' + 이런저런 옥사를 비롯한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국정 농단(47자, 14%)'에 관한 규탄이었다.[1]

그 다음이 여러 가지 민폐에 대한 내용(34자, 10%)이었는데, 궁궐 공사로 인해 국가 재정 지출과 부역이 지나쳤다는 것은 그 중 하나로서 제시된 거다. 엄밀히는 과다한 재정 지출과 부역을 지적한 것도 아니었다. 부지 확보를 위해 민가를 많이 철거했고 공사 기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었다.[2]

알다시피 광해군은 이씨 조선이 멸망하는 날까지도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다. 이는 다른 거 살펴볼 필요도 없이 끝내 조·종호를 받지 못해 군호로 불리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 존속 기간 내내 공식적으로 '폭군'으로 인정되었다는 거다.

근데 광해군에 대한 당대의 여러 평론을 보면 왕궁 복구 사업에 대한 부분은 언급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뭐 그렇게 강조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원래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명을 배반한 일이 가장 중점적으로 성토되었다. 그러나 인조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전도에서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고 군신 관계를 맺어 광해군보다 훨씬 더한 '배반'을 한 다음부터는 그 부분은 쏙 빠지고, 주로 폐모살제 부분이 강조되었다.[3]

비교적 간략한 인조의 즉위 교서에는 아예 공궐 공사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정이 고갈되며"라고 하여 국가 재정의 위기 상황을 거론한 듯한 부분이 있긴 한데, 해당 문구의 원문을 보면 民窮財盡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財가 국가 재정을 말하는 건지, 민간인의 재산을 말하는 건지는 확실히 단정 짓기가 어렵다. 특별히 그 중 어느 것을 배타적으로 가리킨다기보다는 그저 막연히 광해군의 '수탈'을 강조하기 위한 문구였을 것이다. 아무튼 오타쿠들의 주장처럼 광해군대 궁궐 영건 사업으로 인해 나라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그것이 쿠데타 제1 원인이었다면, 하다 못해 제2, 제3 원인이라도 되었다면 저랬을 리가 없다.

궁궐 공사로 인해 광해군 연간에 유난히 민중에 대한 조세·노동력 수탈과 국가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했던 것—근데 언뜻 봐도 이 둘은 동시에 일어나기 힘들 거 같지 않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태조 이성계나 선조 이연처럼 제노사이드를 벌이거나, 세종 이도처럼 주인이 종놈·종년을 맘대로 죽이는 건 대단한 일 아니라는 대신의 말을 "아름답게 받아들여" 노비 계층의 인권 상황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그런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광해군은 성군이다, 명군이다,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명색이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입장이면, 제발 그런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세종이건 광해군이건 인조건 똑같이 착취 구조 제일 꼭대기에서 기층민중의 고혈을 빨던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한 악인들도 아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의감, 측은지심 그런 거 다 갖춘 사람들이었다. '폭정'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상실할 경우 목숨 부지를 장담할 수 없는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또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구현하는 데에 필요해서 했던 거지, 그냥 나쁜 놈 또는 미친 놈이라서 벌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폭정이든 선정이든 왕 혼자 맘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일 리도 없다. 조선의 왕들은 구원자도 파괴자도 아니었다.


각주

  1. 계승범, 〈계해정변(인조반정)의 명분과 그 인식의 변화〉, 《남명학연구》 제26권, 2008, 450-451쪽.
  2. "撤民家數千區, 創建兩宮, 土木之役, 十年未已。"
  3. 계승범, 같은 논문, 454-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