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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역사왜곡

진보위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이 문서에서는 나무위키의 역사 관련 문서의 편향성과 오류에 대해서 다룬다. 과거에 일반인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퍼뜨리는 주범이 반공주의적 국가 교육과 '환빠'와 같은 광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선동물이었다면, 현재는 단연 국수주의/반공주의/서구중심주의로 똘똘 뭉친 이른바 역덕들의 포털인 나무위키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무위키의 역사관련 항목들은 역사학자들이 나무위키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가운데 편향적인 비전문가인 역덕들이 자신이 권위자인 양 행세하며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는 곳이다. 밀덕이면서 나무위키와 같은 서브컬쳐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학자 임용한(그래도 이분은 제도권에서 공부한 사람이다)조차도 나무위키는 인명, 시간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할 때만 참고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나무위키 역덕들이 추종하는 임용한조차도 나무위키의 신뢰성은 거의 바닥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곳의 '유사역사학' 항목은 전신인 엔젤하이로위키 시절 초기부터 존재하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관련 항목들도 매우 풍성하지만, 사실 나무위키의 역사 서술이야 말로 유사역사학이라는 명칭이 전혀 손색이 없다. 서술자의 비전문성, "역사는 이래야 한다."는 목적론적 기술, 정치사·전쟁사 중심의 역사 이해, 민중 중심적 역사관에 적대적인 자세, 선악 대립 구도에 대한 집착, 사료비판에 대한 몰이해,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을 통해 원사료(의 번역문)는 읽어도 그런 사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논문은 거의 읽지 않으며 읽어도 철저히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편취하는 태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 '환빠'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사이비 역사가들의 숭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상고의 '환국'이나 고대 국가들인데 비해, 나무위키 사이비들의 경배는 주로 조선에 집중된다는 점 정도만이 다를 뿐이다.

그곳의 여러 역사 관련 문서 중에서도 단연 최악을 꼽자면 편견 및 고정관념/역사이다. (웹아카이브)문서에서 편견 및 고정관념의 사례로 지적한 것을 보면 분명한 사실관계의 오류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관점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거기서 오류로 지적하는 부분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애초에 보편적인 고정관념이라고 하기 힘든, 그냥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갖고 열내고 있는 경우도 엄청 많다. 그러니까, 지들이 오히려 역사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여간해서는 역덕들의 손을 들어주는 나무위키측에서도 이 항목은 문제라고 판단했는지 항목을 삭제했다.

원인[편집 | 원본 편집]

서술자들의 비전문성[편집 | 원본 편집]

나무위키의 역사 항목을 작성하는 유저들을 살펴보면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다수를 이루는 극우스피커형 역덕, 다른 한 부류는 독자연구가 금지된 나무위키의 규정을 위반하고 자신의 썰을 푸는 독자연구 역덕이다. 이 두 부류 모두 사학 전공자는 소수이고 있어 봤자 학부에서나 공부한 정도이다. 프로페셔널한 역사학자들(적어도 석사급 이상)은 학계의 엄격한 검증이 기다리는 논문 쓰기에 바쁘기 때문에, 나무위키 따위에 썰을 풀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작성자 대부분은 네이버나 이글루스에서 자신의 썰을 풀고 있는 블로거들 아니면 그런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무지한 이들이다. 이런 블로거들은 관련 서적 몇 권 주워 읽고 본인의 썰을 풀기 시작한다. 수학, 자연과학, 공학이면, 하다 못해 사회과학만 되어도 학문에 대한 기초적인 훈련이 안 된 이들이 기존 통설을 '논박'한다거나 하는 일은 엄두를 못 낼 텐데 역사학이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본인와 블로그와 동일한 아이디를 나무위키에서 사용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블로그에서 내가 이렇게 나무위키 문서를 수정했다며 편집 내역을 밝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니, 나무위키 역사 관련 문서 작성자들의 정체 내지 성향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학부생 정도로 시간이 많은 자들이며, 관련 서적 몇 권 주워 읽고 인터넷 검색질로 관련 지식을 섭취해 나무위키의 관련 항목을 작성하는 부류가 대부분이다. 극우·영웅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군사 동호인 이른바 '밀덕(밀리터리덕후)'으로서 겸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과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삼덕(삼국지덕후)' 출신도 많다. 그리고 이글루스 역사 밸리 출신이 많은데, 이들은 민족주의를 비판한답시고 그동안 민족주의자들에게 고대 삼국이나 고려에 비해 자랑스러운 취급을 받지 못했던 조선을 '근대 국가에 버금가는 정교한 관료제와 법치가 실현된 문명 국가', '유교적 민본주의 이상이 실현된 전근대에 드문 인권 국가'쯤으로 찬양하며 부정적 서술을 매우 금기시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역사학에 대한 기본도 없는 자들이 자기 입맛대로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중국사 덕후는 중국 대륙의 민국 시기를 다룬 문서들을 매우 열심히 채우는 중인데 중국공산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서술 일색이다. 이자는 중일전쟁에 관심이 많았던 밀덕이었는데 아예 중국사를 다루는 역덕으로 전직해서 나무위키에 왜곡 기술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중국사를 다루는 어떤 나무위키 유저는 심지어 파룬궁 계열이 제작하는 종교 언론인 《대기원시보》를 인용하여 관련 항목을 작성하기도 한다.

나무위키에 많은 친일 역덕들은 역사책도 아닌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이나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류의 역사소설을 읽고 일본 역사 전문가 행세를 한다. 이러니 이들이 나무위키에 푸는 썰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에 더 가깝다고 봐도 된다. 또한 나무위키의 친일 역덕들은 이승만의 친일 청산 방해·중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프랑스의 친독 부역자 청산이 지나쳤다는 뉴라이트세력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마치 이것이 정설인양 나무위키의 프랑스 항목 곳곳에 서술해 놓았는데, 프랑스 현지에서 그런 주장은 오직 르펜과 같은 극우 세력만이 펴고 있다. 이들은 극우 밀덕 커뮤니티(유용원의 XXXX)에서 그런 주장을 담은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마치 정설인 양 서술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작성하는 나무위키에서 공정한 역사 기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들은 '역덕' 블로그, 카페들을 드나들며 '역잘알'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자신이 올바른 시각으로 교정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본인의 지론을 벗어난 의견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다. 자신의 주장에 결정적인 헛점이 드러났을 때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피울 때가 많다. 또 그 의견을 수용해도 논의의 큰 흐름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만한 것이 아닌 사소한 부분이라도, 자신의 지론에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면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분량이 방대하고 "민족주의·민중사관에 함몰된 일반인들의 편협한 시선을 바로잡는다"는 식의 프레임을 잡고 썰을 펼치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매우 신뢰성이 높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각 커뮤니티에서 나무위키로 역사 공부 시작하려는데 괜찮냐고 묻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나무위키를 가지고 역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마치 역사소설을 가지고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것, 또는 일베를 가지고 한국 정치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역사 공부 시작하려면 덕후가 아닌 관련 학위 소유자(물론 학사 학위는 안 쳐준다)인 전문가들이 쓴 개론서를 읽어라. 그리고 비전문가의 인터넷 게시물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이 아닌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쓴 논문을 읽어라. 논문 다 읽기가 번거로우면 초록이라도 읽어라. 그것도 귀찮다면 적어도 공신력있는 출판사에서 펴낸 백과사전의 관련 항목을 읽어라. 포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각종 백과사전의 관련 항목들만 읽어도 상당한 역사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더 정확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적어도 연구 서적·논문을 통해서는— 특정 역사관을 주입시키려는 선동 같은 거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훨씬 더 중립적이다.

영미 보수 역사관의 맹목적 수용[편집 | 원본 편집]

이들이 열심히 가공해 퍼뜨리는 역사학자들의 썰들은 대부분 학계에서도 '극단적'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에서 많은 문서들이 편향된 대안우파 이데올로그들을 마치 객관적인 논객으로 소개하는 것처럼, 나무위키의 (특히 진보나 혁명운동을 다룬) 역사 관련 문서들은 상당 부분 이런 극우 역사가들의 극단적인 일설을 학계의 정설인 양 기술하고 있다. 나무위키 역덕들 대부분은 역사학에 대한 이해나 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기 때문에 '통설'과 '일설'을 구분하지 못하며 자신들이 입맛에 맞는 극우 저술이나 극우 역사가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신성시한다.

이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가들은, 비록 전문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역사학계에서도 "역사관이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나무위키 역덕들은 이들을 마치 학계의 권위자나 중립적인 양 서술한다는 것이 문제다. 학계의 정설이라는 것은 결국 역사학계라는 커뮤니티에서 합의된 내용인데, 역덕들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게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특정 학자의 극단적 주장들(이른바 '역사적 수정주의'적 기술)을 정설로 여기고 나무위키에 버젓이 써놓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적능력이 미숙한 사람이 대체로 그렇듯이 나무위키 역덕들은 흑백논리를 좋아하는데다가 전반적인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역사를 선악/흑백으로 나누고 한쪽을 편들면서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식으로 기술하는 극단적 성향의 역사가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제국주의 세력의 본진인 영미의 역사학계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그 커뮤니티에서 합의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혁명에는 상당히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위키가 추종하는 역사가들은 이런 역사학계에서조차 "극단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역사학의 기본도 모르는 나무위키의 역덕들은 이들만이 진실을 알려주는 역사가라고 착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무위키의 러시아사 역덕들이 주로 인용하는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로버트 서비스나 중국사 역덕들이 인용하는 프랭크 디쾨터는 우파 역사가의 대표적인 인물들이고, 이들의 저작들은 강한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로버트 서비스 같은 경우는 영미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러시아 혁명을 서술하면서 당시 혁명가들을 살인마로 그리고 있다. 로버트 서비스가 쓴 《레닌》을 보면 적백내전기 레닌과 볼셰비키가 창설한 체카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잔인하게 그리는데, 반동 세력인 백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볼코고노프는 소련을 박살낸 옐친의 보좌관을 하던 사람으로, 소련을 부정하여 정권을 잡은 옐친의 정권을 옹호하던 이데올로그 노릇을 하던 인물이다. 디쾨터는 일관되게 극우 독재 체제인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옹호했고 마오쩌둥과 중국 혁명을 폄하하는 저술을 발표해 온 역사가이다. 이들의 저술은 절대로 '균형잡힌 저술'이 아니며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극단적 일설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에서 이들의 저서가 자주 출판되는 이유는 그것들의 학술적인 가치가 높아서라보다는, 역사학계 일반의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저작들이라 언론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의 통설을 고루 반영한 균형잡힌 서적은 너무 밋밋하다는 이유로 출판계에서 외면받는다. 사실 이런 책들은 사실 영미권에서도 기본적으로 상업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대학 출판부에서 주로 출판되며 대학교재로만 이용될 뿐 일반인들한테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나무위키 역덕들은 외국어 능력이 부족한 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책을 접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의 통사 수업을 들을 때나 이런 책을 접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은 당연히 통설을 반영하여 신중히 서술되기 때문에, 흑백논리로 점철되고 센세이셔널한 설을 펴는 (진중권식 표현으로는 "섹시한") 극우 역사가들의 책들에 비해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나무위키러들이 이런 책을 찾아 읽을 리 만무하다.

문제는 이런 극우 역사가의 저서가 출판될 때마다 《조선일보》와 같은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저자 인터뷰를 하면서 진보적 변혁 운동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대중에 조장한다는 점이다. 역사학계의 정설을 모르는 역덕들은 그러한 소개 글을 보면서 그것이 정설인 양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그러한 저작에 대한 소개가 뿌려지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외국의 전문가들이 뒷받침해 준다는 사실에 고무된 극우 역덕들이 기존의 '좌편향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성토를 쏟아내는 동시에, 극단성을 문제삼는 소수의견을 짓밟고 조리돌림하며 '적'들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신앙의 강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 결과 그들 세계에서 극우 똘아이들의 저작들은 성서화된다. 이들 우파 역사학자들을 신성시하는 나무위키러들이 손에서 러시아-중국 및 제3세계의 혁명운동은 철저히 무질서, 혼란, 학살로 폄하되고, 혁명에 타도된 반동세력들은 미화될 수밖에 없음은 필연적이다. 2019년에도 전혀 학문적 검증이 안된 일본 극우가 펴낸 이따위 저작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한 극우 사가들의 영향을 듬뿍 받은 나무위키의 얼치기들은 우파의 흑역사들은 애써 가리면서 혁명가들을 악마화하는 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파가 벌인 학살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 "불가피했다', "피해 보고에 과장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좌파가 벌인 학살은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기술하는 식. 혁명 정권의 정책실패로 빚어진 여러 기아 사태(대약진운동·홀로도모르)를 의도된 학살인 것처럼 호도하지만, 제국주의 국가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일으킨 기아 사태는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옹호한다. 이들이 대약진운동기 대기근이나 이오시프 스탈린의 공업화 시기 일어난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기술하는 논조와 윈스턴 처칠 내각 시기 식민지 인도에서 일어난 벵골 대기근을 기술하는 논조를 비교해 보라.

사례[편집 | 원본 편집]

러시아 혁명 및 스탈린 정권 왜곡[편집 | 원본 편집]

에드먼드 버크를 시조로 하는 영미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대중 혁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은 물론이고 근대의 문을 연 알린 프랑스 대혁명조차도 미친 짓이다라고 표현하며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 성향을 지닌 가장 대표적인 역사가가 바로 로버트 서비스로, 비록 사료의 발굴과 해석에서는 탁월한 면이 있지만 러시아 혁명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정치적이며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서비스의 저서가 나올 때마다, 영미권 진보주의자들이 항의를 하고 때론 반박 서적을 펴내기도 할 정도다.

소련 붕괴기에 나온 볼코고노프의 저작은 결국 "레닌을 비롯한 러시아 혁명가들은 다 나쁜놈, 그리고 소련을 모두 청산하자는 옐친은 민주 개혁가"로 요약된다. 볼코고노프는 옐친 보좌관 재직 시절 자신의 권한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소련의 비밀 문서고에서 자료를 발굴해 소련이 감추고 싶어하던 흑역사를 여럿 폭로한 바 있다. 볼코고노프의 저술은 학문적으로도 별볼일 없는 폭로 저널리즘에 가깝지만, 러시아 혁명을 어떻게든 나쁘게 서술하고 싶어하는 영미 역사학계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 영미권에 대거 번역되었다.

나무위키의 굴라그(gulag) 문서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나 로버트 콘퀘스트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볼코고노프와 같이 이오시프 스탈린을 악마화 하는 인물들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여 과장을 일삼고 있다. 이들은 굴라그 수감자가 적게는 900만에서 1200만 많게는 2000만명 이상이 수감되었고, 총 5300만에 달하는 소련 시민이 굴라그를 거쳐갔다고 주장하지만 1980년대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1939년 당시 노동수용소와 이주지, 구치소에 수용된 인원은 약 200만 명이었고 그중 실제 정치범은 45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1937년에서 1939년 사이에 노동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은 영미권 보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300만에 훨씬 못 미치는 16만 명이었으며, 그 기간에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도 수백 만이 아닌 약 10만 명이었다.

그러니 나무위키에서 제시한 보수 사학자들이나 솔제니친이 제시하는 굴라그 수감자 수치는 실제보다 최소 10배 이상은 부풀어진 지극히 과장된 수치다. 물론 그것도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스탈린 정권이 폭압적인 독재 정권이라는 우익들의 비판을 드러내는 데는 충분한 수치이긴 하다. 그런데 왜 옐친 부역자들이나 서방권 보수학자들은 저 적지 않은 수치에 만족을 못할까? 이오시프 스탈린이 서방의 관점에서 독재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지 몰라도 스탈린을 '동시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희대의 악한'으로 그리기에는 많이 부족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베트 콘퀘스트나 솔제니친이 사실인냥 버젓이 인용되는 것이다.

과거 나무위키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관련 부분에는 그 시기 죽은 사람이 430만 명이라는 어용학자 루돌프 럼멜의 지극히 과장된 수치를 마치 사실인 양 인용해 놓기도 했었다. 진보위키에 있는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루돌프 럼멜은 반공주의에 빠져서 자기 멋대로 덧셈 뺄셈 하며 만든 즉 숫자가지고 장난질하며 자기 혼자 만들어대는 이상한 통계를 들고 나오는 극우 네오콘이다.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과 학살은 지극히 과장하지만 정작 미국이 저지른 대대적인 학살에 대해선 매우 축소하는 인물로 편향성을 말로 할 것도 없기에 신용할 가치가 전혀 없다.

중국 현대사 왜곡[편집 | 원본 편집]

나무위키의 중국 현대사를 채우는 자들은 대체로 넷밀덕 권성욱이 쓴 도서 '중일전쟁'을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디쾨터의 연작[1] 및 망명 중국인 장룽의 저서를 근거로 일부 역덕들이 나무위키에서 "중국현대사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편파적인 서술을 일삼고 있다. 권성욱은 본질적으로 역사와는 거리가 먼 밀덕으로 장제스 지지자이며, 이들이 근거로 드는 디쾨터, 장융 등은 모두 역사 서술자로서 문제가 많은 인물들이다.

일단, 권성욱은 역사학 전문가가 아니며, 그나마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공신력있는 역사지식은 공무원 시험 준비중에 있었을 듯한 다이제스트식 요약강의가 전부이다. 그의 역사 관련 정보를 채울 수 있었던 나머지는 독학이라고 주장하며 본인은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자신이 역사적 중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독학으로 일관한 역덕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것은 바로 권성욱같은 확증편향이다. 그가 많은 책을 읽었을지는 몰라도 장제스에게 우호적인 자료만들 찾아본들 역사적 진실을 가려낸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그리하여 권성욱은 역사적 맥락을 간과한 채 중일전쟁 기간에 일본군이 국민당군의 주력을 섬멸하기 위해 벌인 대규모 회전만을 가지고 장제스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디쾨터는 일관된 장제스 옹호자이며, 장제스의 시각에서만 중공 체제만을 바라본다. 장융은 개인적으로 중공체제에서 많이 박해를 당했고, 서방으로 망명한 사람으로, 객관적인 역사가가 절대로 아니며, 개인적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디쾨터 등이 옹호하는 장제스는 1980년대까지는 반공적인 한국에서도 미화를 못하던 인물이었다. 장제스 일가 및 그 부하들의 부패상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옹호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공 사관에서 쓰여진 서울대 동양사학과의 동양사 강좌시리즈에서도 장제스 개인에 대한 옹호는 전혀 없으며, 서울대 동양사학과 태두였던 민두기조차 《장제스는 왜 패하였는가(로이드 이스트만 저, 1986년 번역 출간)》라는 서적을 번역 출간하면서, "마오쩌둥이 잘해서가 아니라 장제스는 자멸한 것이다"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이 있는 먼나라 이웃나라 저자 이원복도 장제스를 전혀 옹호하지는 않는다. 아니 전두환시기에 나왔던 도덕교과서조차 장제스는 부패로 망했다고 명시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0년대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디쾨터 등의 장제스 옹호자들이 펴낸 책들과 밀덕 권성욱이 장제스를 미화하며 펴낸 '중일전쟁' 관련 책이 나온 후 나무위키 역덕들은 그런 책들을 출처로 삼아 장제스를 옹호하고, 중국공산당을 폄하하는 기술로 중화민국기, 국공내전기 문서들을 채우고 있다.

최근에 번역된 필립 쇼트의 《마오쩌둥》은 보수주의자들의, 학문적 평가라기보다는 광란극에 가까운 마오쩌둥 악마화를 전면적으로 반박한다. 필립 쇼트는 마오에 관한 서방 연구자들의 저술을 깊이 분석함으로써 서구적 편견에 갇힌 마오쩌둥 연구의 실상을 드러낸다. 쇼트는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마오쩌둥의 악마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장룽·존 핼리데이의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프랑크 디쾨터 홍콩대 교수의 인민 3부작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서구 독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장룽의 마오 전기와, 중국 혁명 신화의 허상을 밝혔다고 평가받은 디쾨터의 연작은 한국에도 소개되어 크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필립 쇼트는, 역사학자들로부터 마오를 일방적으로 폄하했다는 평가를 받은 장룽은 물론이고, 마오쩌둥 체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찬사받은 디쾨터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쇼트는 이들 모두 마오에 관한 부정적 편견 때문에 일부 증거 자료를 자신의 논지에 유리하게 선택하고 왜곡했음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특히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 때 대규모 기아 사태를 일부러 용인했으며 심지어 자원 배분 차원에서 환영했다고 주장하는 프랑크 디쾨터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필립 쇼트는 장제스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를 그가 세운 체제의 허약함에서 찾았다. 공개 처형과 비밀경찰로 유지되던 일당 독재, 전쟁 수행을 위한 화폐 남발이 야기한 극심한 물가 상승과 실질 수입의 감소, 정당한 상행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만연한 부정부패가 국민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도시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산당이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들을 점령하자 많은 시민들이 이를 저항하기보다는 환영했다는 사실은 장제스 정부의 실패를 반증한다.

베트남 전쟁 왜곡[편집 | 원본 편집]

나무위키러들이 주관심사가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는 우파의 흑역사를 감추는 것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그곳의 베트남 전쟁/한국군 그리고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들이 했던 대민 사업과 활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한국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는 거의 다 부정한다.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를 요약하면 구수정과 진보학자 사기꾼, 위대한 국군 만세, 학살 하나도 없어로 요약된다. 쉽게 말해 1960, 70년대 대한뉴스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된다. 문제는 이런 밀덕들의 극우적 관념들이 일반인들에게 사실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있다. 베트남 전쟁 한국군 관련한 문서들은 그냥 딱 그것이 벌어지던 시기 한국의 관변 매체들의 기사 수준이다.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이, 그 당시 대한민국에 보도되었던 여러 기사들을 나무위키 문서와 비교해서 보면 알 수 있다. 위에 인용된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의 린선사 승려 학살 문단에는 베트콩의 조작이라는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1990년대 국내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시킨 구수정에 대해선 인격모독을 일삼으며 그녀의 모든 주장을 완전히 부정한다. 그러면서 1968년 미군이 저지른 학살인 미라이 학살처럼 당시에 공론화되지 않았으니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의 기가 막힌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군은 베트콩을 소탕하는데 능수능란했기에 동맹군이던 미군도 한국군의 전투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존재였다고 한다. 즉 이들은 그 규모가 큰 미라이 학살 사건도 묻힐 뻔한 사건이었다는 사실, 더구나 당시 서방권에서 한국군의 참전 자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간과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고 출처로 삼는 자료들은 국방부측의 문서나 당시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과 같은 참전용사들의 입장이다. 군인이니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해당 사건의 이해 당사자이기도 한 채명신의 증언이라면 무작정 신뢰할 수 없음이 너무도 당연한데, 나무위키 역덕들한테는 그런 기본적인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채명신이 "한국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양민(민간인)을 보호한다"는 말을 실제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베트콩 포로를 무단으로 처형했던 참전용사 김영만은 "채명신의 주장은 병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라고 반박한다.

사실 그런 식으로 대외적인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건 나중에 전범 재판 받기 싫어서 발을 빼려던 의도건 어지간한 근대 국가의 군대라면 학살, 강간 등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지, 대놓고 그러한 잔학 행위를 권장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 군대나 마찬가지고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군도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들어 그 군대의 잔학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군대 지휘부가 책임을 면하지도 못한다. 하라고 등을 떠밀지는 않았을지언정 자기 군대의 병사들이 포로들과 점령지 민간인들을 상대로 온갖 범죄 행위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적군 정세도 속속 들이 파악하고 있는 군대 내부의 정보 부서들이 자기네 군대 일을 모르겠는가? 애초에 전쟁 중의 군대가 대규모 만행을 저지르면 적 진영에서 이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범죄자들을 적극 색출 처벌하지 않는 식으로 사실상 방조하기 때문이다.

나무위키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고자이 학살도 남베트남군의 소행으로 왜곡하고 있다. 학살 피해자들이 그린 벽화에 남베트남군 레인져 부대와 유사해 보이는 부대 마크가 보이는 것을 가지고 나무위키는 "남베트남군이 했다."는 성급한, 하지만 본인들 구미에는 맞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인근 마을 주변 사람들과 피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군 맹호부대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번에도 무시한다. 물론 피해자의 증언이라고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베트남 정부와 협력하여 철저한 진상조사를 한 다음에 내린 결론이 가장 신빙성이 높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주장은 아예 무시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무위키의 태극기부대류들은 무시하겠지만, 고자이 학살에 대해 자신의 죄과를 자백한 참전용사가 있다. 선교사인 이우석씨다. 이우석씨는 맹호부대로 참전하여 고자이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을 한 사실을 고백했으며,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빈딘성에서 피해자들을 돕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고, 이는 베트남 언론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학살의 사진 자료와 과거 국정원이 조사했다는 의문을 받고 있는 퐁니 퐁넛 학살에 대해서도 이들은 그저 의혹수준으로 퉁치고 넘긴다. 당연히 여기서 나무위키가 더 신뢰하는 쪽 자료는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단체들의 입장이 아닌, 베트남 전쟁에 대해 반성의식이 전혀 없는 채명신 같은 군인들의 증언과 자료다. 따라서 나무위키는 퐁니 퐁넛 학살도 없었던 사례로 얘기하고 싶어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나무위키가 베트남 전쟁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매카시즘 적이고 반공적인지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에는 구수정 박사를 비롯한 진보계열 인사들이 주장하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료들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군 학살 지역의 피해자들 대다수가 한국군이라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확한 증언' 내지는 '근거 부족'을 운운하며, 이를 무시한다. 위에서 언급한 고자이 학살도 그렇고, 대표적으로 1966년에 있던 빈호아 학살은 빈호아 마을 주민 대다수가 이구동성으로 한국군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증언을 하고 있지만, 나무위키는 이번에도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 1968년에 있던 하미마을 학살의 경우 국내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단체가 기록삭제를 요구하며 마을 주민들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추태를 부렸지만, 이게 하미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진실을 가릴 수 없다라고 하며 거절했던 얘기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 나무위키의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는 심각할 정도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려는 일본 극우주의자 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나무위키 극우들이 서술한 이런 문서 때문에 굳이 베트남 전쟁 한국군을 중심적으로 다룬 나무위키 문서가 아니더라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술들이 다른 문서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나무위키는 베트남 전쟁 한국군 관련 문서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왜곡도 적잖은데, 베트남 전쟁을 아직도 북베트남의 침략으로 간주하는 극우 반공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서술이 곳곳에 보인다. "자유월남"이니 "적화통일"이니 무슨 반공 집회 보는 것 같다. 딱 그것이 벌어지던 시기 대한뉴스에서 보도하는 내용의 수준이다. 그들이 왜곡하는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개입할 명분을 찾기 위해 북베트남의 영해에 들어가 공격을 유도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1차·2차 공격을 누가 저질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북베트남으로 진격하지 않았다는 점과 북베트남군이 호치민 루트를 통해 증강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침략전쟁설을 부인하는데, 둘 다 억지에 불과하다. 첫 번째 논리로 미군의 침략 행위를 옹호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군의 영국 대공습 또한 침략이 아니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논리를 팩트 체크해 보자면, 당시 북베트남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베트콩에 대한 지원이었지 남베트남 정부에 대한 직접 전쟁은 아니었으며, 기본적으로 베트남 전쟁은 남베트남 내부 조직인 베트콩과과 남베트남 정규군의 대결이었다. 1968년 구정 공세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병력이 남베트남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베트콩들이었다. 북베트남의 일방적인 공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전쟁 막판인 1972년 '부활절 공세' 때부터나 본격화된 것이다.

또 다른 펙트를 얘기하자면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연구그룹" (study group)이라는 이름이 붙은 범죄적인 특수부대(MACV-SOG)를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 부대의 주요 임무는 전쟁 범죄적인 것으로, 북베트남 주요 인사와 남베트남 정부에 반대한다고 판단되는 여러 남베트남내 민주인사들을 암살하는 것이었고,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것도 이들이었으며, 그린베레와 같은 이런 특수부대들은 미국의 전면적인 개입으로 확대되기 이전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남베트남과 때로는 북베트남 지역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했었다. 이것은 1954년에 맺은 제네바 협약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우리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의 본산인 나무위키는 이런 사실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심지어 넷극우들은 정신나간 어용학자 루돌프 럼멜이 쓴 《베트남 데모사이드》라는 찌라시 수준의 통계 자료 인용해서 월맹군과 베트콩이 최대 30만 명을 학살했다는 헛소리를 나무위키에 싸질러 놓기도 했다. 럼멜에 따르면 베트콩과 월맹군이 13~30만을 학살하는 동안 미군은 겨우 1만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물론 웃기지도 않는 소리고, 1968년 부터 1971년 까지 미국이 저지른 무차별 전쟁범죄인 피닉스 작전의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2만 7천 명이다. 럼멜은 자신의 저서에 베트남 전쟁 당시 폭격 사망자가 최대 8만 명에 그친 것으로 적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200만 명이고, 많게는 300~500만이다. 사상자 대다수는 월맹군이나 베트콩을 대상으로한 학살에서 미군의 폭격과 고엽제 투하로 인해 나온 것이지만, 나무위키는 "최근에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학살도 많았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은근슬쩍 극우편향적 역사왜곡을 하고있다.

더 나아가 호치민을 포함한 북베트남 지도부를 테러리스트 혹은 계획적 학살자 따위 혹은 민족반역자 따위로 역사왜곡을 하는 반공주의적 서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건 거기 인용된 자료만 보더라도 솔제니친보다 못한 듣보잡 반공주의 저널리스트의 찌라시 자료라는 사실이다. 1969년 그 의회보고서도 애리조나에 사는 어떤이가 그 듣보잡 반공주의 저널리스트가 쓴 찌라시를 가지고 주장한 것 뿐이다. 마치 북한인권이랍시고, 온갖 거짓자료와 날조문서들을 가지고와 반북선전을 하는 수잔솔티와 그 세력들의 소리와 비슷한 맥락이니 한마디로 위조와 날조된 주장들 범벅이다. 2020년 베트남 다낭 코로나 사태 이후 들어서 이러한 반공주의적 편향 서술들이 곳곳에서 더 심해지고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정통성이 북베트남에게 있다는 이른바 미국 1급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마저도 "남베트남은 정통성 있는 국가"라는 식의 주장으로 무시하며 반공선전을 하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을 계획했던 이들이 쓴 문서마져도 무시하는 현실부정의 극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 부역한 이들이 모인 집합체였던 남베트남 공화국을 무슨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된 체제인냥 얘기하면서 베트민을 민족반역자 집단으로 모는 반지성주의의 끝을 보여주는데, 극히 일부를 과장해서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이념전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항불투쟁의 중심은 베트민이었고, 이들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심이었으며,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에 보면 이들 또한 좌우를 망라한 조직이었다. 나무위키 반공주의자들은 호치민의 공산당이 베트남 독립조직의 후발주자였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종교계가 19세기 중후반부터 독립운동에 나섰고, 베트남 공산당은 1930년대에 활동을 본격화 했다고 말하지만, 이것또한 악의적인 역사해석이다. 애초에 레닌의 러시아 혁명은 1917년에 일어났고, 그 이후에 다른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전파된 것이다. 베트남 또한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 활동이 일어나고 조직들이 결성됐다. 즉 이런 조직이 뭉쳐서 탄생한게 193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이다. 또한 이런 움직임은 판쭈찐과 판보이쩌우의 독립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리고 호치민은 1919년부터 안남애국자 연합을 창설하여 독립을 청원했었고, 1900년대 중반에는 반프랑스 시위에도 참가했다. 마치 공산당 인사들이 아무것도 안한것 처럼 얘기하는 것과, 공산당 운동을 민족주의 운동과 분리해서 보려는 것 자체가 한국 뉴라이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무리수를 써가며 사회주의 운동을 부정하며 친미제국주의자 이승만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71년 대니얼 엘스버그에 의해 폭로된 미국의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에 따르면 1945년 당시 호치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호치민은 이미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을 일본과 프랑스에 맞서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베트남 전체 차원의 유일한 정치조직으로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호치민은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베트남의 유일한 전시 지도자였으며, 1945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일본을 타도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창설하고, 진주하는 연합군을 위해 환영식을 개최하면서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충성을 얻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1945년 9월의 몇 주 동안, 베트남은 근대사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호치민의 지도하에 남에서 북까지 통일됐다.

- 펜타곤 페이퍼

나무위키의 베트남 전쟁 당시 전투 관련 문서들 대다수가 미군의 우수한 화력을 찬양하는 서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중 일부에선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를 대한 옹호하는 서술들도 종종 발견된다. 남베트남의 독재자 응오딘지엠에 대해서는 꼭 남한의 뉴라이트가 이승만, 박정희 찬양하듯이, 또 요새 같은 무리들이 장제스 띄우듯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하고 있다. 무슨 응오딘지엠 정권의 경제발전상이니 뮈니, 그래도 응오딘지엠이 국가 운영에 있어서 능력이 좋았다니, 남베트남이 엄연히 인정받은 정식국가라니 뮈니하며 말이다. 그러니까 나무위키 넷극우들 보기에 국가의 지도자는 그저 친미 우파이기만 하면 다른 건 다 필요없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이 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후안 과이도나, 이승만, 응오딘지엠, 마르코스, 피노체트 등과 같은 제국주의자들이 미국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미국이 적성국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이던 베트콩들에 대해 대중적이지 못한 집단으로 서술하려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1960년 당시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에 대해, 온전히 테러와 폭력에만 의존하여 대중적이지 못한 집단 즉 북베트남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만 묘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반공주의적이고 친미주의적인 학자 더글라스 파이크(Douglas Pike)가 베트콩이 대중적인 조직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러한 사실마져도 손쉽게 무시당하고 있다. 파이크는 반란자들과 나눈 대담과 노획한 문서들에 기초해 저서 『베트콩(Viet Cong)』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중조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민족해방전선은 남베트남의 2,561개 촌락에 전국적인 규모의 정치·사회 조직을 만들어 냈다. 민족해방전선을 제외하고는 남베트남에는 실제로 대중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 미국 민중사 2 p.213

1971년에 공개된 펜타곤 페이퍼에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온다.

오로지 베트콩만이 농촌지역에서 실질적인 지지를 얻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펜타곤 페이퍼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보더라도 베트콩들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처럼 묘사하는 나무위키는 쉽게 말해 반공주의적인 역사왜곡을 심각하게 저지르고 있다.이들이 베트남 전쟁이라는 주제를 볼 때, 한국군과 미군을 긍정하고 북베트남측과 베트콩을 부정적으로 보며 응오딘지엠과 남베트남 정부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에는 결정적이게도 반공주의(Anti-Communism)가 있다. 따라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극구 부정하면서 미군의 폭격과 고엽제 투하는 학살이 되지않고, 베트콩의 혁명적 투쟁은 계획적인 학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진보위키 베트남 전쟁 문서에 있는 전쟁범죄 부분을 읽어보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소리이고 반공주의적 물타기인지 알 수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런식의 접근으로 혁명투쟁을 본다면 그들이 차마 혁명이 아니라고 부정못하는 프랑스 혁명도 테러리즘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무위키에서 반공주의적 서술을 일삼고 있는 이들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스스로가 심각한 형용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또한 남베트남 공화국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식민주의와 미제국주의의 식민주의를 이어받은 국가다. 애초에 대다수 인사들이 프랑스 식민지 관료 출신이었고, 나무위키에서 얘기하는 민족계열 독립운동 세력 따위는 애초에 힘도 없을 뿐더러 민중들에겐 그냥 듣보잡 수준이었다. 나무위키에서 반공주의적 독립운동가로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 까오다이교 출신 남베트남 군인 찐민테의 경우 응오딘지엠 정권 밑에 있다가 제거된 인물이었는데, 그와 그가 지휘한 군대는 프랑스와 협력한 이력이 있는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물을 반공 독립운동가라며 치켜세우는 나무위키는 뉴라이트 세력들이 이승만이나 조병옥 장택상 등과 같이 반민중적 행위를 일삼던 이들을 두둔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보이고 있다. 1930년 당시 옌 바이 봉기를 주도했던 베트남국민당이 대중적으로 널리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이유에는 반불봉기가 프랑스 당국에게 진압 당했던 것도 있지만, 베트남 공산당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농민 문제를 무시했고 농민들에게 당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도 안주었으며 사회 개혁 프로그램도 지니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국민당과 베트남혁명동맹회는 호치민 정권하에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받으려고 했는데, 1946년 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이들에게 보장했던 의석을 배분했고, 베트남 국민당에게는 50석을 혁명동맹회에게는 20석의 의석을 주어졌다. 다만 이들은 1946년 2월 중국 국민당군이 북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기반을 상실했기에, 이미 세력이 미미한 상황이었다 보는게 맞다. 거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트남국민당이나 베트남혁명동맹회는 중국 국민당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독립국가건설과정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었으며, 베트민 이외에 남부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토착종교인 까오다이나 호아하오의 경우만 보더라도 새로운 국가를 건설 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비군주제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으며, 효과적인 정치세력으로 그들을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도 부패했으며, 과도하게 지방화되어 있어서 전국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조직으로 성장이 불가능한 존재였다.[2] 따라서 이들이 집권을 못한것은 베트민의 배신과 같은 반공유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것 때문이 아닌, 반민중성 반대중성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베트민에게 밀렸던 것이다. 즉 나무위키 반공주의적 서술 문서는 이러한 맥락도 본질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오직 반공주의에만 몰두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위키에서 반공 독립운동이라며 어떻게든 정당성을 주려는 베트남국민당이나 까오다이 호아하오 일부 군벌 세력들에 대해 윤충로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프랑스의 재진주는 대중뿐만 아니라 정치세력 간의 이데올로기지형 또한 단순화시켰다. 계급적 경계와 민족적 경계는 대체로 민족/반민족이라는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의 대립으로 치환되어 버렸다. 압도적 다수의 지주는 프랑스 쪽에 붙어야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적 대립을 친불파와 반불파의 대립으로 경계 지어 버렸다. 우파보수세력이나(대월·복국·베트남국민당·베트남혁명동맹회 등) 종교집단(까오다이·호아하오)의 선택의 폭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다. 조직적으로 견고하지 못했고, 민족정 정통성마저 취약했던 이들 세력이 취할 수 있는 길은 베트민의 그늘 속에서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거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반민족주의자의 길을 갈 수밖에 다른 정치적 선택지는 없었다. 프랑스가 재진주한 베트남에서는 조선의 보수우파들이 이용했던 신탁통치 문제와 같은 탈출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노골적인 편가름이었고, 그 편가름은 이념이 아니라 민족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그 선택의 결과는 프랑스와 베트남인들의 인종적 경계만큼이나 뚜렸한 것이었다.

-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 p.506~507

나무위키에서 주장하는 베트민의 악마화를 돌려 얘기하면 비군주제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는 세력이 정통성 있는 독립운동 세력들인데, 베트민은 이들을 제거한 주체이기에 매국노고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일종에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말이 안되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이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찬양하는 것들은 이 정도 수준으로 하나같이 끼위맞추기식 논리이다. 따라서 민중 대다수가 베트민에 참가하고 싶어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 베트민들은 계급과 계층을 망라한 단체였다. 남베트남 공화국이 괴뢰집단인 것은 미국이 계획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선언은 미국의 지속적인 입장은 베트남 국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였지만, 실제 목적은 미국은 24만 명에 달하는 남베트남 정규군(ARVN)을 훈련시키는 한편, 재정 지원을 지속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프랑스와도 협력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것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작성한 펜타곤 페이퍼(The Pentagon Papers)에 나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나무위키의 반공주의적 서술들은 미국의 1급 기밀문서에 적혀있는 역사적 사실마져도 무시하는 반지성주의의 끝판왕인 것이다.

호치민에 대해 계획적 학살자니 테러리스트니 뭐니하며 반공주의를 설파하는 이들은 마치 본인들이 나무위키에 써놓은 자료들이 베트남에 알려지면 베트남 인민들이 호치민의 묘를 파내버릴거라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 있다. 거기에 인용된 디시인사이드 군갤 자료들에도 그런식의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며, 그저 해외에 망명한 남베트남 보트피플들이 현재 베트남에서 받는 취급의 평가를 받을 뿐이다. 이는 현재 러시아에서 솔제니친이나 로버트 콘퀘스트 같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반공주의적인 역사왜곡에도 민중의 70%가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지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런 생각 자체가 반공주의의 단순무식함을 입증해준다 할 수 있다. 나무위키에 실린 베트남 전쟁이나 호치민 등에 대한 관점은 쉽게 말해 미국 ned/cia 돈 받아 허위/과장으로 선동질하는 극우 탈북자들의 찌라시 소리나, 거짓말을 일삼는 모란봉 클럽이나 이만갑(이제는 만나러 갑시다) 수준과 일치한다.

기독교 우파적 서술[편집 | 원본 편집]

유대교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종교의 영향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초기 기독교가 이전 시기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교 신앙'에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인한다. 특히 공관복음서에서 그리는 예수의 생애에 관해서는 유대교의 영향마저 인정하지 않는 극도로 보수 신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기독교 우파의 영향을 받아 서구 역사를 서술할 떄 중세 유럽, 십자군전쟁을 옹호·찬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기독교의 절대화로 중세유럽이 고대 그리스·로마에 비해 문명이 퇴보했고 세속주의가 시작된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서구가 비서구보다 앞섰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서구 문명을 지탱했다는 식의 서술은 1980년대 신우파의 선전인데 당시 기독교를 비판했던 계몽주의를 격하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이 비서구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를 내세운 종교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과 아메리카원주민의 사회상이었다. 기독교를 비판했던 17세기 서구의 계몽주의자들은 중국의 유가사상으로부터 인본주의· 합리주의를 배웠고#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는 민주주의·사회주의·양성평등의 근거를 찾았다.

반진보적인 허무주의적 역사관[편집 | 원본 편집]

역사상의 주요 민중 혁명에 대해서, 혁명 기간에 빚어진 유혈극들을 부각시키며 혁명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혁명의 의의에 대해서도 "그저 지배층이 옷만 갈아 입은 것"이라는 식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할 때가 많다. 주류학계의 학설과 모순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 혹은 역사적 수정주의자들의 학설을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혁명군의 진압으로 학살이 벌어진 방데 전쟁은 프랑스 내부에서 혁명 자체를 무의미하게 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나 역사적 수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를 역사적 허무주의라고 하며 극우 작가 이문열이 1970-80년대 반독재 투쟁을 조소하며 쓰던 논리이다.

혁명으로 집권한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권위주의나 사적인 추문만을 부각시킨다. 특히 유치한 게 '사치 행각'에 대한 강조인데, 물론 민중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는 제3세계 나라에서 집권자들이 개인적인 소비에 돈 펑펑 써대는 꼴을 곱게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빨아대는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도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서 고급 승용차를 여러 대 굴리는가 하면, 자가용 비행기에, 개인 목장에, 휴가 때는 요트 유람 다니며 온갖 사치를 일삼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나무위키 넷역덕들은 마치 그것이 아시아/아프리카 '종특'인 것처럼 지껄인다.

남아공 흑인 정권 같은 경우는 정권 교체를 이끈 넬슨 만델라가 워낙 제1세계 정치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다 보니 일방적으로 조롱하고 헐뜯는 수준은 아니지만 '(백인 정권처럼) 강력한 사회통제를 하지 못해 발생한 혼란', '여전한 흑백 간의 빈부 격차'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최대한 부정적인 덧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이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중대한 진보는 대단찮다는 듯이 다룬다.

카다피 같은 경우는, 최후에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쓰다가 유혈 참사를 빚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적어도 나무위키에 서술된 것처럼 (그나마 카다피는 내부 혼란중에 서방의 개입으로 카다피가 살해되면서 몇년간 혼란이 지속되자 나무위키에서 조금 긍정적으로 톤이 바뀌었다) 인간쓰레기 정도의 통치를 보였던 지도자는 절대 아니다. 카다피는 한때 아랍의 체 게바라라는 명성을 가졌던 인물이며, 그의 통치 시기 리비아 인민들은 무상의료와 무상전기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진보적인 이들조차 이렇게 디시일베와 다르지 않은 나무위키의 견해에 동조하거나 영향을 받아서, 일부 유저들은 진보위키에서까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을 악질적인 독재자 혹은 무능했던 지도자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주의 사상가들이나 지도자들의 과오가 없지는 않겠지만, 과오를 과장하면서 업적은 싸그리 부정하는 것은 극우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 없다.

친미적인 변혁운동의 미화[편집 | 원본 편집]

나무위키에서 인류사의 모든 민중 혁명을 부정적으로 서술한다면 적어도 일관성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거기 넷역덕들은 또 친미적이거나 반공적인 혁명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소련의 입김을 벗어나고자 하던 헝가리 혁명이나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에서는 매우 미화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80년대 말 동유럽의 자유화 혁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며 이후의 혼란과 퇴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타도된 공산 정권을 '절대악'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 치하 루마니아 같은 경우 1970-80년대에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해서 소련에 고개 숙이지 않는 자주 노선을 추구하여 미국 언론이 찬사를 보내던 나라였다.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에 동유럽에 자유화 바람이 불면서 차우셰스쿠가 몰락하긴 하지만, 정권을 잡은 자들은 차우셰스쿠만도 못한 인간들이었고, 이들의 집권 이후 루마니아는 전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져서 30년 간 IMF 신세를 두 번이나 졌다. 차우셰스쿠는 적어도 집권 중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긴축재정을 펼쳐서 나라가 IMF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정도 성의는 있었다. 그 때문에 국민 불만이 고조되긴 했지만, 적어도 나중에 정권을 잡은 우파 지도자보다는 훨씬 책임감이 있었던 인물이다.

또한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의 경우 미제 CIA가 지원한 반혁명이었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시위를 옹호하듯이 오로지 긍정성만 부각하고 있다.

자유화 이후 집권한 자유주의자들이나 공산당 후예들이 저지르는 '사치 행각'에 대한 지적도 보기 힘들다. 일부 친러 지도자에 대해서나 그런 얘기를 좀 할 뿐이다.

미국 독립 혁명에 대해서도 오직 찬양 일색이다. 독립 전이나 독립 이후나 북아메리카의 기층민중은 똑같이 백인 대지주들의 속박에 놓여져 있었으며, 노예들은 여전히 노예였고 원주민들도 여전히, 아니 독립 이후에는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핍박을 받았다는 하워드 진 식의 냉소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회주의적이거나 이슬람주의적인 혁명에 대해서는 그것이 본질인 양 그리도 웅얼대는 '유혈 사태'의 끔찍함에 대한 강조도 전혀 없다.

'허무주의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반미 성향의 혁명에 대한 태도일 뿐, 반공-친미에 대해서는 오히려 '꿈과 희망의 역사관'인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무위키의 역사서술은 친미적 역사관임에 다름아니다.

영웅 사관[편집 | 원본 편집]

기본적으로 나무위키의 역사 관련 서술은 역사를 소설화, 위인전화하며, 특정 역사 인물에 대한 팬덤/안티팬덤의 미화/악마화가 판치는 곳이다. 현대 역사학은 대체적으로 영웅사관을 부정하며, 주요 정치적 인물들보다는 사회 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나무위키의 역덕들은 그러한 담론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수준이 높지 않다. 결국 이들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철저히 영웅적 개인의 '혜안'·'의지'·'결단' 같은 것으로 본다. 즉 철저히 전근대적, 지도자 중심인 영웅사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나무위키러들은 전문 역사가의 견해에 따르는 척하며, 전형적인 아마추어 팬덤형 역사관을 드러내는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을 매우 비하하지만, 실상 시오노는 나무위키 서술자들의 부정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에 가깝다.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라는 특정 인물에 꽂혀서 그의 행적와 후대의 로마 황제들과 계속 비교하는 식으로 로마사를 기술하는 것은, 중국의 삼국 시대를 철저히 촉빠 팬덤의 입맛대로 기술하고, 이성계·이방원·세종 3대 및 정도전 등 조선 건국기의 핵심 인물들에 대해 북한의 김씨 일가 우상화 뺨치는 미화·찬양을 늘어놓고 있는 나무위키 역덕들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에이 삼국지의 영향을 받아 인물의 '능력치'라는 개념에 굉장히 집착하기도 한다. 어떠한 중대 과제의 성패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식으로 (캐릭터의 능력치)X(배분된 자원량)의 결과로 단순무식하게 판단하는 것. 인간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든 동일하게 발휘할 수 있는 고정된 능력치 같은 건 없으며, 그 과제에 대한 전문성과 적응력, 주위 사람과의 인화, 소속된 조직의 역량, 상부의 지원, 무엇보다도 '운'이라는 외부 변수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낼 수 있는 결과값의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마련인데, 이런 점을 깡그리 무시한다. 역덕들도 그런 점을 약간은 의식해서 (또 삼국지 게임 식으로) 무력이니 지력이니 정치력이니 하는 식으로 능력치의 종류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다양한 대내외적 변수 같은 건 거의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 축구 경기만 해도 감독만 잘났다고 경기에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 휘하 코칭 스태프의 역량, 선수들의 역량 및 당일 컨디션, 구단의 지원, 관중 열기, 기상 상태, 상대팀의 전력 같은 것이 다 작용한 결과가 경기의 승패인데, 나무위키 역덕들은 축구팀에 비하면 몇 천, 몇 만 배가 거대한 국가의 성패가 단순히 지도자 개인, 범위를 넓게 잡아 봐야 두 자릿수밖에 안되는 극소수 엘리트들 이른바 '인재풀'의 능력치에 좌우되는 것으로 본다. 소설도 아니고 게임을 기반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바로 나무위키의 역덕들이다.

한국사 왜곡[편집 | 원본 편집]

나무위키 한국사 관련 문서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보수적, 영웅주의적 역사 해석 등에 더해서 다음과 같은 성향까지 나타나기에 더욱 개판이라 할 수 있다.

  • 전근대 왕조 국가들이 편찬한 이른바 '정사'(正史)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 사료비판을 할 능력이 없는 나무위키러들은 지배층의 관점으로 씌어진 정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거나 분석할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맹종하게 된다.
  •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통치 체제를 '민본주의', '도덕 정치', '공존 추구' 등으로 미화하는 수구성
  • 여성 인권 하락, 군사력 약화 등 그 시대의 퇴보를 극구 부인하며 지배층의 교조적인 사대주의, 차별주의에 대한 지적을 '과거에 대한 현대인의 몰이해' 등으로 치부하는 광적인 조선 왕조 우상숭배

현대사에 있어서는 남북한 분단에 대한 미국의 책임,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국가주의적·반공주의적 태도가 두드러지는데, 이 점은 네티즌의 극우화를 주동해서 현재의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이들의 친미·반공주의적 역사 기술은 그다지 반미·친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주류학계의 견해와도 동떨어진 수준으로, 반공 이념 프로파간다인 군부 독재의 도덕 교과서 수준이다. 포스트모던적인 탈민족주의가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극우 국가주의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특히 남북 분단문제는 현재 학계에서는 거의 미국과 극우세력의 책임으로 결론이 나고 있는데, 나무위키에서는 오히려 1980년대의 반공-극우 논리를 그대로 추종하는 세력들이 냉전시대의 서술을 일삼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아마도 박정희-전두환 추종자로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사 방면에서 독자연구파가 상당히 많다. 독자연구파는 《조선왕조실록》이 국문 번역되고 인터넷으로 공개되면서 대폭 늘어났는데,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한 사료임에는 틀림 없지만, 사료가 씌어질 시점의 역사적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인용하다 보면, 결국 조선왕조가 구현하려고 했던 유교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마련이다.

국문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하는 독자연구파 나무위키의 역덕들은 온갖 억측 및 왜곡으로 역사 소설에나 나올 만한 센세이셔널한 엉터리 가설을 만들어 역사학계의 정설을 부정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이극돈은 조선왕조 이래로 유자광과 함께 무오사화의 주동자라고 규정되어 왔는데, 나무위키에는 이극돈은 무고하다며 장황한 독자연구를 늘어놓는 작성자가 있다. 이는 역사학계의 통설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인데도 나무위키에는 버젓이 올라오며 별 태클도 받지 않는다. 여기에 임사홍 항목도 이런 독자연구파 역덕이 개입해서 "실제로는 간신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서술했다. 이런 식의 독자연구는 역사 왜곡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나무위키에는 그런 문서가 한둘이 아니다.

이승만 옹호[편집 | 원본 편집]

국민보도연맹 학살 문서나 거창양민학살 그리고 제주 4.3 학살과 같이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넘쳐나는 사건들은 손도 못대고 있지만, 이승만/평가 문서나 이승만/일생 문서 등은 어떻게든 이승만 입장에서 옹호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태가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이승만이 한 온갖 제국주의적이고 반혁명적인 행위들이 미화되고 있다.

결론[편집 | 원본 편집]

유사역사학의 경연장이자 유사역사학자들을 길러내는 대학원

나무위키의 역사항목의 퇴행적익 반공주의적 역사관은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에 만들어진 국정교과서보다도 더 한심한 것으로, 극우 세력을 양산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나무위키러와 같은 비전문가들이 다루는 역사가 나무위키와 같이 공신력이 전혀 없으면서 공신력을 가장하는 백과를 타고 대중에 널리 퍼지는 것은 돌팔이가 뇌수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사역사학자들을 양산시키는 해악을 유발시킨다.

  1. 흔히 '인민 3부작'으로 불리는 책. 각각 '해방의 비극' , '마오의 대기근' , '문화 대혁명'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2. 베트남과 한국의반공독재국가형성사 p.21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