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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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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년 03월 05일 ~ 1919년 01월 15일)는 폴란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사상가다. <자본의 축적>이라는 책을 집필하였고,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하여, 독일 혁명을 이끌었다. 이후 사민당의 배신으로 잡혀가고 독일 자유군단의 어느 병사가 휘두른 개머리판에 맞고 사망한다. 시체는 운하 속에 던져졌고 5월 31일 물위로 떠올랐다.

레오 요기헤스(Leo Jogiches)는 그녀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애인이었다. 룩셈부르크가 피살되고 두 달 뒤인 1919년 3월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피살된다.

생애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러시아 제국 통치하에 있던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이사 가게된 어린시절의 로자는 거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5살이 된 로자는 유대인 혁명 서클과 폴란드 프롤레타리아당에 가입해 총파업 주도 등의 반정부 활동을 벌였다가, 탄압받자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했다.

망명후 로자는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경제학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공부했다. 그녀 그곳에서 평생의 연인이자 동지가 될 '레오 요기헤스'를 만났고 본격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결혼 덕분에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로자는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여 활동한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서 있던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돌아가 폴란드 사민당을 창당하고 폴란드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게 되는데, 이 당시 계급 투쟁보다는 반러시아 운동과 폴란드 독립을 먼저 주장하던 폴란드 공산주의자들과 충돌했다. 이는 당시 그녀가 민족주의에 대해 매우 경계했기 때문이다. 로자는 민족주의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아래 계급투쟁을 방해하고, 이게 결국 국가주의에 기반한 이기주의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녀는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되는 등, 본격 혁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로자는 1907년 베를린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자본의 축적"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사민당으로 활동했던 것도 이 시기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로자는 독일의 빌헬름 2세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갔고, 대략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16년 풀려난 그녀는 자신이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실망 했다. 제2 인터내셔널에 있던 사민당들이 조국 방위라는 개념을 내세워 제국주의간의 영토전쟁 혹은 패권전쟁을 맹목적으로 옹호했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을 떠난 로자는 카를 리프크네히트, 클라라 체트킨 등과 함께 인터내셔널단(Die Internationale)을 결성하고, 투쟁을 이어갔다. 이때 로자와 그들은 어떤 단체를 조직하는데, 그게바로 스파르타쿠스단이다. 이때 로자는 다시 한번 독일 제국에 의해 체포되어 또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된다.

로자가 감옥에 있을 당시 1917년 러시아에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로자는 볼셰비키의 혁명을 환영하면서도 독재화를 우려하기도 했었다. 1918년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뒤, 11월 혁명으로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스파르타쿠스단의 기관지인 "적기(Die Rote Fahne)"를 창간하고 사민당을 수정주의라고 격렬히 공격한다. 그해 12월 스파르타쿠스단과 다른 사회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1919년 1월 1일 독일공산당을 창당하고 혁명(1월 봉기)을 일으켰으나, 독일 사민당의 비겁한 배신과 독일 자유군단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봉기는 실패로 끝났고, 로자는 체포당한다. 체포된 로자는 길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다 어떤 병사가 휘두른 개머리판에 맞고 사망했다. 당시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이어, 단결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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