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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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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Geunhye-Park
별명 닭근혜, 선거의 여왕
출생일 1952년 2월 2일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국적 한국
직업 정치인
정당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경력 한국의 제 18대 대통령
←이전 대통령다음 대통령→
(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
표방이념 권위주의, 뉴라이트, 매카시즘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시대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 나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터무니 없이 유신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한 1981년 10월 28일 일기[1]
“대통령을 일일이 코치해야 해서 피곤하다”
—최순실[2]

소개

박已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 ) 또는 다카키 긴메구미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한민주주의유신공화국 제18대 대통령이다.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독신은 무슨 정윤회는 뭔데 대통령, 부녀 대통령이다.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매국 협상을 체결하여 일본에 역사를 팔아먹음으로써 정식으로 매국노로 등극하였다.

공약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반값등록금, 고등학교 무상교육, 군복무기간 18개월 단축 등 많은 공약을 세웠으나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다.

최순실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남으로써 박근혜는 결국 탄핵되었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 한나라당)에서도 탈당된 상태이다.

생애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만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가 국무회의에서 실제로 한 말[3]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육영수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다. 프랑스의 그르노블대학으로 유학하였다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제거되자 귀국하였다.

1979년까지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였다.

1979년 10월 26일에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이 일어나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 의사에게 처단당하였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正修獎學會) 이사장을 지냈다.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를 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1998년 4월에 치러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15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달성군에서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8년 10월부터 한나라당 부총재를 맡았으며 2002년 2월 탈당한 뒤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여 당대표로 취임하였다.

2002년 11월에 한나라당과 합당하여 복당하였다.

2004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였다.

2011년 10월 홍준표 대표가 사퇴한 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당선되었다.

2012년 7월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고, 8월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12년 12월 10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개입한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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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등의 최서원(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 증거가 드러나면서 결국 2016년 12월 9일 19시 03분 부로 직무 정지 되었다.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파면되었다.

결국 구속되었고 (서울구치소에) 수인번호는 503번이다.

1심에서는 징역 24년, 벌금 180억을 받았는데 벌금은 구형에 비해 아주 적다.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352183) 이 기사에서 보듯이 가볍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종교

오마이 뉴스가 공개한 편지에서 박 이사장은 "(최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 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 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4]

사이비 종교인 최태민에게 빠졌다.[5]

“예언이 있다는 것. 또 그것대로 일이 이루어진 예들을 볼 때 역사와 인간의 운명도 모두 다 천명에 따라 각본에 따라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다 정해진 것을 인간들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부질없이 무리를 하다가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1991년 2월22일, 책 93쪽)

―최태민씨 이야기도 했나.

"대표 시절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다. 꿈에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나타났다고. 그리고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밟고 가라. 그리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최태민 목사와 상의하라'. 귀곡 산장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

당시 대한구국선교단 총재를 맡고 있던 최태민이 설교를 하자 신도들이 광적으로 기도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딜 봐도 정상적인 종교 모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도들은 온몸으로 떨며 울부짖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도 울면서 최태민의 설교를 듣고 있다. 이어서 박근혜가 연단에 올라 신도들을 향해 연설을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어법

  •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 "산소까스와 이산화까스"
  • "김석기 의원과 이재연 의원"
  • "오늘 통합민주당의 정당해산 선고가 있었습니다"
  •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 "솔선을 수범하여"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별명

  • 댓통령 - 국정원이 박근혜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작성 한 데서 온 말로써 댓글 덕분 당선 된 대통령이라 하여 댓글 + 대통령이라는 뜻.
  • 닭근혜 - '박'과 '닭'이 발음상 비슷하고 생긴게 닭같으며 본인이 내뱉은 말을 '닭 대가리'처럼 금방 잊어버린다는 점에서 붙여진 별명.
  • 수첩공주 - 박근혜는 수첩에 필기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수첩 없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수첩에 적혀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데서 붙여진 별명.
  • 가카 - 권위주의적인 정치 스타일에 대한 풍자로 붙여진 별명이다.
  • ㄹ혜 - 일종의 야민정음으로 '근'이 'ㄹ'과 비슷하게 생긴 점에서 붙여진 별명
  • 503 - 박근혜의 수인 번호
  • 그네 -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업무 스타일

김 씨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주로 침실에서 업무를 봤다. 서류가 놓인 침실 책상에서 노트북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근무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평일에도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대부분 관저 침실에 있었다. 일주일에 4일은 관저에서 일을 보고, 3일은 외부활동을 했다. 외부로 나갈 때나 본관 집무실에 갈 때는 반드시 정 씨 자매를 불러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했다. 머리를 올리지 않으면 외부 사람을 만나지도, 외부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본관에 출근하더라도 볼일만 보고 바로 관저로 돌아왔다.”

[6]

해상 치안 공백

박근혜는 해상 치안 공백을 만들었다.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면서 마약 밀수 등 해양 범죄 단속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직 개편 직후인 2015년에는 마약 범죄 단속 실적이 제로에 달하는 등 심각한 해상 치안 공백 사태를 야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정부의 즉흥적인 탁상행정으로 인해 국민들이 지난 3년 간 해상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기타

-그 때 본 박근혜란 정치인은 지도자 감이었나요?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일이 있어요. 박근혜 후보가 참석한 첫 회의로 기억해요. 초창기였으니 캠프의 핵심인 국회의원들이 모두 나왔죠. 거기에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도요. 당시에 유승민 의원이 후보에게 물었어요. ‘메시지와 관련한 건 어떻게 팀을 꾸리고 추진할까요?’ 그랬더니 후보가 ‘정호성 비서관한테 보고하시고 상의하세요’라고 답한 거예요. 모두가 당황했죠. 유 의원이 또 물었어요. ‘조직(관리ㆍ구성)은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는 ‘안봉근 (수행)과장 통해서 보고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정책은 이재만 보좌관 통해서 보고하고, 상의하고… 그런 식이었죠. 의원들이 어디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굳었어요. 의원들을 졸지에 3인방의 들러리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같은 상황이 이어졌겠죠. 3인방이 딱 자기 영역을 나눠서 하던 대로 ‘관리’했겠죠. 대통령은 3인방 통해 보고받고 그들과만 상의하고…. 거기에 최순실이 있었을 테고요.”

[7]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