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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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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1959년 7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작가, 방송인, 논객이다. 2020년 현재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생애[편집]

초기 생애[편집]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유신시절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서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0년 박정희 사후의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를 빨리 추진하라고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으나 , 전두환 일당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했다. 1985년 서울대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이때 항소심에서 제출한 "항소이유서"는 명문으로 두고두고 민주화 진영에서 읽혔다. 이렇게 필력이 있었기 때문에 운동을 하면서도 이때 가명으로 드라마 작가를 하기도 했다.

1988년 청소년들에게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집필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진보진영의 대표논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때 13대 국회의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을 하면서 노무현 의원과 알게 되었고, 이 인연은 나중에 그를 정계로 이끈다.

1990년대[편집]

경제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났으나 IMF때 박사학위 받기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1997년 대통령 전야에 유시민의 97대선의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내세워 "경상도 유권자들의 김대중 비토가 심하기 때문에 김대중이 나서면 승산이 없고, 조순과 같은 제3후보를 옹립해 신한국당(나중의 한나라당의 전신)의 후보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열렬한 김대중 지지자인 강준만의 반박을 받기는 했으나, 강준만도 "경상도 유권자들의 무조건적인 김대중 비토"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정치인[편집]

2002년까지 방송진행인,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노무현 후보에 대한 조중동의 편파보도에 분개하여 직접 정계에 뛰어들었다. 이때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원웅 의원과 함께 노무현 지지를 위한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은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일던 후보교체론에 대응하여 노무현 축출되었을 경우 노무현을 다시 후보로 옹립하기 위한 정당이었다. 이 정당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민주당이 분당된 열린우리당에 합당하게 된다.

여당의원이 된 그는 기존 정치계의 문법과 잘 맞지 않아서 기존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 22일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이때 유시민을 반대하던 여러 정치인들(대표적으로 이종걸)이 반노로 돌아서는계기가 된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