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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24 바이트 제거됨, 2020년 2월 15일 (토)
편집 요약 없음
== 집권까지 ==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와서 쑨원의 휘하에서 혁명군을 이끌었다. 1922년 광둥 군벌 천중밍의 반란으로 쑨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인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1924년에는 국민당에 신설한 황푸 군관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25년 쑨원이 사망하자 국민당은 우파 후한민과 좌파 왕징웨이의 쌍두체제루 왕징웨이로 쌍두체제로 운영되었고, 장제스는 그저 국민당 소속 국민당의 군사지도자에 불과했으나, 국민당이 점점 군사적으로 팽창해나가면서 점점 권력이 강화되어 실질적으로 국민당에서 최대 세력을 거느린 자가 되었다실질적인 국민당의 최고 실력자에 가까워졌다. 국민당은 1926년에서 192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북벌을 단행했는데, 장제스는 이를 지휘했다. 국민당군이 북진하자 중국에 할거하던 수많은 군벌들이 국민당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장제스는 겉으로는 표면상으로는 중국의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 쿠데타로 집권 ==
역덕들은 장제스가 마치 쑨원의 정통후계자이며 합법적으로 집권한 것처럼 주장하는데 본래 장제스는 국민정부의 군사지도자였을 뿐, 정권을 쥔 처지는 정부 수반이 아니었다. 하지만  1927년 상하이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이 벌여 북벌군의 입성을 도왔는데, 이때 장제스는 이의 이들의 뒤통수를 쳐서 국민당군 및 청방이라는 상하이 깡패를 동원하여 진압했고 이를 기화로 국공합작을 깨면서 기존의 중화민국 한커우 정부를 무력화하면서 난징정부를 선포하고 정권을 장악, 집권했다. 이러한 대학살 및 비합법적인 집권과정은 4.12 쿠데타라고 한다. 장제스는 쑨원의 유지를 내팽개치고 쿠데타로 자신의 독재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파업과 봉기로 군벌정권을 뒤흔들어 국민당군의 입성을 도운 도시노동자 및 도시빈민들이 단순히 군벌제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새로운 진보적 질서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자, 장제스는 이를 배신하고 무참히 짓밟은 것이다. 국민당의 북벌을 도운 농민들은 감조(소작세 인하) 및 토지개혁, 그리고 노동자 및 도시빈민들은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개선을 요구했고, 국민당은 이를 받아들이고 중국을 통일하면 바로 실행할 것을 약속했다.
북벌에 나선 국민당군 상당수는 공산당원 및 공산당원에 동조적인 민중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진군하면서 여러 군데서 이런 혁명적 요구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혁명은 상하이의 자본가들 및 외국 제국주의 세력에는 위협이었고 이들은 상하이 재벌인 천광푸(K.P. Chen)를 내세워 장제스에게 거액(당시 미화 3천만불) 을 제공하면서, 한커우에 있는 국민당 정부 대신 난징에 새로운 정부를 세울 것을 부추켰다. 장제스는 이 자금을 가지고 반공을 외치며 난징정부를 선포했고, 군사력과 자금을 쥔 장제스 앞에서 기존 국민당 한커우 정부는 비굴하게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장제스는 이런 자본가들 및 이들의 자금을 새로운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아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민중을 배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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