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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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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어:Hong Kong, 홍콩, 중국병음: Xiānggǎng, 샹강)은 중국 남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크게 홍콩섬(香港島, Hong Kong Island), 카우룽(九龍, Kowloon)반도, 산가이(新界, New Territories) 및 란타우섬(大嶼山, Lantau Island)으로 나뉜다.

면적 1,108㎢, 인구 약 748만명, 1인당 명목 GDP 약 5만 달러로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영국이 지배하기 이전의 홍콩은 작은 어촌이자 해적소굴이었다.

중국의 아편전쟁 패전으로 영국이 1842년에 홍콩섬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고 1860년에는 카우룽(구룡)반도 지역을 떼어 갔다. 1898년 현재의 산가이(신계) 지역을 99년간 조차하면서 현재의 홍콩 영역이 완성되었다.

그러다 산가이 지역 조차가 끝나는 1997년에 전 지역이 중국에 반환되었다.

정치[편집 | 원본 편집]

정치적 수장인 행정장관은 임기 5년에 연임이 가능한데, 무소속이어야 하며 간선제로 뽑는다.

민법과 형법은 영국의 법에서 따왔다.

의회는 직선제와 간선제 혼합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1개 도시이지만 특별자치구로서 중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자치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독자적인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일국양제). 하지만 2020년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온 데는 그간의 우산혁명이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운동 과정에서 홍콩 시위대들이 식민지 시절 홍콩의 깃발이나 성조기를 흔들고 오성홍기를 짓밟는 등 노골적인 서구 추종과 분리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에 자극된 바가 크다. 한국의 반중 세력은 홍콩인들이 그런 식으로 '짱X 놈들'에게 한 방을 먹인 것을 몹시 반겼지만, 이는 민주화 운동의 목표 달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홍콩 사람들 시각에서야 자기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 본토는 한낱 먼지 풀풀 날리는 변방에 지나지 않겠지만, 중국 사람들 시각에서는 홍콩이야말로 중국에 흔해 빠진 대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선전(深圳)의 대도시권만 해도 경제규모 면에서 홍콩을 능가한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홍콩특별행정구'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호의'에 의해 유지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반적인 중국인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자국의 1개 도시'를 봐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제 홍콩의 반중파들이 기대할 것은 오직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이 경제제재 등의 압력으로 중국을 굴복시키는 것일 테지만, 전세계 GDP의 단 0.1%도 차지하지 않는 북한과는 위상이 전혀 다른,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제재는 가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한 출혈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중국으로서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홍콩 시위대들이 중국 대륙인의 시각에서 '일탈'로 보이는 그와 같은 행동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중공 정권이 과연 그들에게 친미/친영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지 않았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한국에 존재한 군부 독재 세력, 또 그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현재의 수구 세력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모든 독재적 정권은 반정부 세력에 대해 '외국의 사주를 받아 국가 분열을 획책하는 자'로 낙인을 찍는 것이 기본 수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재 국가 속의 자유 도시'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었고, 일국양제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식민지 조선 대 '내지',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과 비교해서도 본토에 대해 터무니없이 열세에 놓여 있는 홍콩 입장에서, 거의 인종주의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의 반중 행태가 '공산당이 눈감아 주는 자유'라도 누리는 데 도움이 될지는 홍콩인들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홍콩의 시위가 중국 민주화에 불씨가 되는 것 역시, 중국 대륙 민중과 홍콩 시민의 연대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홍콩의 민주파가 목표로 하는 것이 '홍콩만이라도 민주주의를 보장받는 것'이든 '중국공산당의 타도'든 중국인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또 알아두어야 할 것은 홍콩 민주화운동의 방향성이 친미, 친서방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다소 사실이나 이 문제를 단순히 냉전기의 좌우 논리로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가령 민주화운동을 반대하는 건제파(建制派) 세력의 대다수는 친중앙정부(친-중국공산당)이지만 엄연히 친기업적이고 사회보수주의적인 우익 세력이고 지지 계층도 홍콩의 중상류층과 부르주아들이지만, 정작 반중적이고 서방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운동의 당사자격인 민주파(民主派)와 본토파(本土派)의 주 지지층이 젊은 중하류층 노동 계급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이들의 정치적 성향 또한 우익보다는 리버럴이나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일부 사회주의 세력도 있다는 점이다. 즉 80년대 이후 탈마오주의화 되면서 보수화된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우익을 편들고 리버럴+좌파와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대만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치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홍콩 민주화-진보좌파 진영에서 나타나는 반중감정은 한국 수구-극우파들의 혐중보다는 차라리 중남미 민주화-진보좌파 진영에서 나타나는 반미감정과 훨씬 더 유사한 측면이 있다.

사회[편집 | 원본 편집]

홍콩의 초등교육은 무상, 의무 교육이다. 대부분 중국어로 수업을 하고 영어도 함께 쓴다.

대학교는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 홍콩성시대학, 홍콩이공대학, 홍콩영남대학, 홍콩침회대학, 홍콩교육대학이 있다.

홍콩은 과거에 영화 제작 산업으로 유명했다.

홍콩은 누진세가 없는데다가 세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하다. 또한 부유층이 주택에 투자하는데다가, 대륙의 부유층들도 홍콩 주택에 눈돌려 부동산 가격이 폭등, 홍콩 서민들의 불만이 매우 커졌다. 홍콩이 사실상의 세습국가인 싱가포르보다 훨씬 민주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시위나 폭동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빈부격차 때문이다.

항쟁[편집 | 원본 편집]

영국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일부에서는 영국 지배하에서 마치 홍콩이 민주체제하에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데, 전혀 아니며, 영국지배하에서도 참정권 제한 및, 영국인의 홍콩인 차별대우 때문에 여러번 시위나 폭동이 발생했다. 1967 사태

중국 시절[편집 | 원본 편집]

2014년 우산 혁명[편집 | 원본 편집]

2014년 행정장관 후보제한에 반발해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2019년 송환법 투쟁[편집 | 원본 편집]

2019년 들어 홍콩 자치정부가 중국의 타 지역(중국 본토, 마카오 및 대만)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가 홍콩에 들어올 경우 그 범죄자를 송환하여 그곳 정부가 처벌할 수 있도록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추진하자, 이를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 시민들이 반발하여 3월 31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0월 1일에는 홍콩 경찰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고교생의 가슴에 총을 쏴서 중태에 빠뜨렸다.

10월 4일에는 14세 소년이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