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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금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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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金星 事件


개요

한국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간첩인 박채서(암호명: 흑금성)가 주도하던 대북 공작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의미한다. 특히 다음 둘,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김대중을 낙선시키기 위해 벌이던 '북풍' 공작이 1998년 3월 이른바 '이대성 파일'로 인해 폭로되는 과정에서 당시 안기부의 지시를 받아 위장 대북 사업을 벌이고 있던 박채서의 정체가 탄로난 사건[1]과, 2006년 박채서가 북한 당국에 한국군 야전교범 등 군사기밀을 넘겼다가 2010년에 적발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2]을 가리킨다. 2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은 이 가운데 전자를 다루고 있다.


흑금성 사건 1: 1998

'흑금성' 박채서는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서 태어나,[3] 3사관학교를 거쳐 육군 정보사령부에 근무하다 1993년 4월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군 시절 자신을 신뢰하던 권영해가 1994년 12월 안기부장으로 취임하자 부름을 받아 안기부 요원이 되어 대북 공작원 임무를 맡게 되었다.[4] 1994년부터는 신분을 감추고 남북 협력 광고 사업을 추진 중이었던 박기영에게 접근해서, 박기영이 설립한 ㈜아자커뮤니케이션의 북한 내 광고 촬영과 관련한 대북 접촉을 도왔다.[5]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안기부와 한나라당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게 대남 도발을 주문한 이른바 '북풍' 공작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관련자인 안기부 대외실장 이대성이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인 정재철에게 관련 극비 문건을 넘겼고 정 부총재는 이를 세간에 폭로했는데('이대성 파일' 사건), 해당 문건에는 흑금성이 방북 도중인 1997년 6월 10일 북한 보위부 인사로부터 남한 유력 대선 주자인 이회창·김대중·이인제의 선거운동 조직에 침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내용과, 같은 해 9월 9일에 모란봉의 초대소에서 비밀리에 김정일을 직접 면담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6] 이에 따라 '흑금성' 박채서는 북한에 포섭되어 대남 공작을 펼친 '이중간첩'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박채서는 억울함을 호소했으나,[7] 결국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8]


위의 '이대성 파일' 사건과는 별개로 박채서는 북한이 남한의 대선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하에 독자적으로 북풍에 대응하는 작전을 진행했다. 북한 수뇌부와 접촉하며 북측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 다름아닌 김대중임을 파악한 것도 박채서가 단독 행동을 벌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9] 박채서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김대중이 경험 많은 정치인이라는 점, 정치 경력 내내 용공분자로 공격받아 왔던만큼 집권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강력한 반공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김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찬양하다가 대립각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 등에서 보수 여당의 후보인 이회창보다도 더 껄끄러운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3] 1997년 7월경 국민회의 소속 의원인 정동영에게 북풍 공작에 관련한 정보들을 전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동영은 처음에 반신반의했으나 박채서가 사전에 경고한 천도교 도령 오익제의 월북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박을 신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민회의는 대책팀을 본격 가동하여 여당의 북풍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그것이 김대중 당선에 이바지한 바는 적지 않았다.[9]


그런데 당시 검찰은 이상과 같은 박채서의 정보 유출 건들에 대해, 북한에 정보를 넘긴 것은 안기부 소속 공작원으로서 활동으로 볼 수 있고, 국민회의 측에 정보를 넘긴 것은 정식 안기부 요원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희한한 논리를 펼치며 박채서를 놓아 주었다.[10]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