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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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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나는 1심에서 3심까지 재판을 받았지만, 또 한 차례의 재판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하는 심판입니다. 하늘의 심판인 역사의 4심에서는 나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나는 기쁘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편안히 사십시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 김재규 의사 유언 중 -[1]

나의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약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내 사랑하는 삼천칠백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지도자

김재규

- 육군교도소에서 강신욱 변호사에게 어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시[2]

아무쪼록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고마움, 민주주의의 귀중함, 또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또 우리가 민주주의를 등한히 하면 꼭 민주주의는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진다고 하는 것, 그런 경우에는 또다시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우리 국민들이 이해를 해주셔야 됩니다. 나는 국민들에게 이것을 간곡하게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 김재규 의사 유언 중 -[3]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또는 줄여서 10.26 혁명은 1979년 12월 26일 김재규를 필두로 한 다섯 명의 의사들이 일으킨 사실상 유신체제의 종말을 가져온 민주주의 혁명을 말한다.

이 사건 이후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에 의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서울의 봄을 맞이하게 된다.

경과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면서 유신헌법을 제가 전방 3군단장을 하면서 구해서 보게 됐습니다. 이걸 쭉 보니까 완전히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아니다. 이것은 삼권이 전부 한 사람에게 귀속돼버렸고 입법부 사법부는 전부 시녀로 전락해버렸어요. 또 이것은 가만히 보니까 독재헌법이라도 국민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께서 계속해서 집권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헌법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헌법을 타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속에 움텄습니다." - 1979년 12월 8일 계엄보통군법회의 제2회 공판 심문 중 -[4]

김재규 의사는 거사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10월 26일 궁정동 중앙정보부 밀실에서 박정희와 만찬을 함께 할 기회가 생기자 거사를 실행할 준비를 하였다. 5시 40분경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먼저 도착하자 김재규는 그에게 차지철 제거를 암시했다. 6시 5분경 연회가 시작되었고 김재규 의사는 밖으로 빠져나와 2층 집무실에서 권총을 갖고 연회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직속부하인 박흥주 의사와 박선호 의사에게 총소리가 나면 경호원을 제거할 것을 지시하였고, 7시 35분경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김재규 의사는 차지철과 박정희에게 각각 2발씩을 쏘아 처단하였다.

여섯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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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