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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실체가 드러났다. [[장충기 문자]], [[삼성언론재단 지원 언론인 목록]]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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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총체적으로 부패한 타락한 실체가 드러났다. [[장충기 문자]], [[삼성언론재단 지원 언론인 목록]] 항목 참조.
  
2019년 3월에는, 경향신문 기자들이 현대차, 한화, SK 등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기획보도를 썼다가 데스크에서 짤렸다. 데스크의 변명을 요약하자면 '대기업 광고 받아야 되는데 부담스럽다'였다고 한다.<ref>https://news.v.daum.net/v/20190320000058725 경향신문 기자 80명 "대기업 기획기사 왜 무산됐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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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에는, 경향신문 기자들이 현대차, 한화, SK 등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기획보도를 썼다가 데스크에서 짤렸다. 데스크의 변명을 요약하자면 '대기업 광고 받아야 되는데 부담스럽다'였다고 한다.<ref>https://news.v.daum.net/v/20190320000058725 경향신문 기자 80명 "대기업 기획기사 왜 무산됐나"</ref>
  
2019년 12월, 돈 받는걸 약속받고 기업 관련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생겼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고,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으며,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95 경향신문 기자들 ‘기사 삭제’ 공론화, 사장·편집국장 사퇴] - 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 “기업 기사와 협찬금 맞바꿔, 있을 수 없는 일… 모든 과정 투명히 공개”</ref><ref>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191222192700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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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돈 받는걸 약속받고 기업 관련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생겼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고,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으며,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95 경향신문 기자들 ‘기사 삭제’ 공론화, 사장·편집국장 사퇴] - 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 “기업 기사와 협찬금 맞바꿔, 있을 수 없는 일… 모든 과정 투명히 공개”</ref><ref>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1912221927001</ref>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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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4일 (금) 18:48 기준 최신판

경향신문은 언론이다.

변천역사[편집]

" 경향신문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숱한 고난과 좌절을 딛고 오늘을 일궈낸 경향신문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1946년 해방공간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의 역사는 짧은 기간 압축적 성장의 빛과 그늘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달려와 오늘날, 한국 언론의 한 축을 감당하는 믿음직한 신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1]

1946년 10월 6일 천주교 서울교구가 운영주가 되어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양기섭(梁基涉) 신부이다.

1962년 2월 경영권이 가톨릭 재단에서 이준구(李俊九)에게로 넘어가 가톨릭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독립지가 되었다.

1966년 4월 기아산업계(起亞産業系)가 신문을 인수하였다.

1969년 4월 신진자동차계(新進自動車系)로 넘어갔다

1974년 7월 24일 한국 문화방송주식회사(MBC)와 통합하여 같은 해 11월 1일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으로 개편하여 매스커뮤니케이션 기업으로 재출발하였다.

1980년 언론기본법에 따라 하나의 회사로 되어 있던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을 분리하여 신문과 방송 2개의 독립된 회사가 되었다.

사단법인으로 출발했던 경향신문은 1990년 8월 1일 한화그룹이 인수하여 주식회사로 전환되었다.

1998년 한화그룹에서 독립, 사원주주회사로 출범하였다.[2]

경향신문 폐간사건[편집]

이승만 독재정부는 1959년 4월 30일 정부 비판 성향이었던 경향신문에 대해 군정법령 제88호를 적용하여 폐간명령을 내렸다.

이에 앞서 앞서 서울시경은 단평 <여적>의 필자 주요한(朱耀翰), 편집국장 강영수(姜永壽), 사장 한창우(韓昌愚) 등을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소환하여 불구속 송청하였고, 검찰은 사장 한창우와 필자 주요한을 정식 기소하였다.

이에 불복한 경향신문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으나, 정부는 폐간처분을 취소하고 무기 발행정지처분으로 바꾸어 발행을 금지하였다. 그 뒤 4.19 혁명이 일어나 도망왕 이승만은 또다시 하와이로 도망하였고 1960년 4월 27일자부터 속간하였다.[3]

타락한 실체[편집]

Jackpic1.jpg 이 문서는 타락한 대상을 다룹니다.
타락한 대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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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총체적으로 부패한 타락한 실체가 드러났다. 장충기 문자, 삼성언론재단 지원 언론인 목록 항목 참조.

  • 2019년 3월에는, 경향신문 기자들이 현대차, 한화, SK 등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기획보도를 썼다가 데스크에서 짤렸다. 데스크의 변명을 요약하자면 '대기업 광고 받아야 되는데 부담스럽다'였다고 한다.[4]
  • 2019년 12월, 돈 받는걸 약속받고 기업 관련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생겼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고,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으며,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5][6]

각주[편집]

외부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