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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 일제시대와 해방정국 당시 조직 폭력배 두목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어린시절은 거지생활을 하다가 1935년에 종로 우미관을 중심으로 건달 두목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 시기 반도의용정신대에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초반에는 건준과 좌익단체아 잠시 몸담았다가 우익으로 전향하여 백색테러를 일삼았고, 미군정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에게 버려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선거에 도전했었고, 국회의원까지 됐다. 1966년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던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 국회에서 똥물을 두척했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김두한(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 일제시대와 해방정국 당시 조직 폭력배 두목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어린시절은 거지생활을 하다가 1935년에 종로 우미관을 중심으로 건달 두목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 시기 반도의용정신대에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초반에는 건준과 좌익단체아 잠시 몸담았다가 우익으로 전향하여 백색테러를 일삼았고, 미군정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에게 버려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선거에 도전했었고, 국회의원까지 됐다. 1966년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던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 국회에서 똥물을 두척했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의 일생사는 장군의 아들과 야인시대로 매우 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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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의 일생사는 장군의 아들과 야인시대로 매우 미화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박정희 시절 말 한번 잘못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당했던 적도 있다.

2020년 11월 1일 (일) 20:02 판

김두한(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 일제시대와 해방정국 당시 조직 폭력배 두목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어린시절은 거지생활을 하다가 1935년에 종로 우미관을 중심으로 건달 두목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 시기 반도의용정신대에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초반에는 건준과 좌익단체아 잠시 몸담았다가 우익으로 전향하여 백색테러를 일삼았고, 미군정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에게 버려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선거에 도전했었고, 국회의원까지 됐다. 1966년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던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 국회에서 똥물을 두척했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의 일생사는 장군의 아들과 야인시대로 매우 미화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박정희 시절 말 한번 잘못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당했던 적도 있다.